내가 읽은 시

습관 - 한영수

공산(空山) 2020. 10. 25. 15:51

   습관

   한영수

 

 

   처음 보는 아침이야

   가슴의 비늘을 세워본다

   머리로 꼬리로 밀어본다

   전진하기에 조금 긴 몸

   요동치기에 조금 무거운 생각

   들판을 가로지른다 개울을 헤엄쳐

   그물망을 뚫고 저기

   바람해변 솔밭에 내리는 기쁜 햇살까지

   가고 간다 제자리 뛰기다

   쫓아오는 바퀴에 순간

   뭉개진 길이다

   쫓겨보면 알지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

   황갈색 가로줄무늬를 지우며 납작

   화석이 되어야 하는데

   누룩뱀 한 마리

   악착같이 꿈틀거려본다

   끈이 풀렸는데도

   기던 그대로

   긴 아침을 기고 있다

   처음 가는 곳은 언제나 멀지

   구불텅구불텅 바닥에 엉겨 붙어

   방금 바닥이 되어버린 것을 모른다

 

 

  『꽃의 좌표 현대시학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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