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흰 스프레이 - 김기택

공산(空山) 2020. 10. 21. 19:56

   흰 스프레이

   김기택

 

 

   그는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것 같은 팔다리를 벌리고

   기형적으로 뚱뚱한 등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바퀴들이 그를 밟고 지나간다

   그는 바퀴들이 더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더 납작해진다

   더 이상 납작해질 수 없을 때까지 납작해져서

   바닥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은 모두

   검붉은 얼룩을 남기며 아스팔트 속에 스며들어 있다

   흰 스프레이로 그려진 허물만 도로 한복판에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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