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최영미의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권순진

공산(空山) 2019. 2. 19. 14:39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최영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 1994.


■ 운동 보다는 운동가를, 술 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 잔치도 끝난 마당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알고 보니 믿었던 너도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한 것이었음을, 물론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꼭 말을 해줘야하나. '그러나 심장 한 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이렇게 뛰고 있다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여기서 ‘이 시대’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마감되고 이 땅엔 형식적으로나마 긴 군사독재가 종식되었다.

적어도 운동권에선 강력한 동기부여가 사라졌던 것이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면 아래로 침잠한 저항의식은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했다. 진술은 '사실관계(fact)'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고백은 '진정성(truth)'을 무릎 꿇고 알리는 것. 그렇다면 사랑의 고백 역시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통째로 드러내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가슴이 없는 시대, 가슴을 펼쳐보여도 등을 돌리는 이 삶의 정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성한 두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성의껏 달래면 피막대기도 세울 수 있는데.

사랑이 없었으므로 아픔도 없었고, 아픔이 없으므로 진실도 없던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아파했을까. 연민이라는 감정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느껴보았을까. 내 생각이 짧았다든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마음속에서나마 해보긴 했을까. 여태껏 우리는 독선적 일방통행의 화살표만 그어진 야만의 시대에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정치 따위는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정말 싫은데, 플라톤의 말처럼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지난 시절 뼈아프게 경험했던 우리들 아닌가.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기어이 '너에게로 가는 길'에 갖다 바칠 것이 호텔방 밖에 없었던 걸까. 이건 좀 부담스러운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그의 이력만으로도 그 콧대의 높이를 짐작한다만 그 방편이 수영장 딸린 럭셔리한 호텔방이라면 너무나 속되지 않은가. “아무 곳에서나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라고? ‘내일도 나는 광야에 홀로 서 있을 것’이라고 했던 시인의 태도로 믿기지는 않는다. 공짜가 아니라 “홍보를 끝내주게 해주겠다”며 제시한 게 고작 “호텔 카페에서 주말에 시 낭송도 하는”것이라는데, 매우 고상한 발상이긴 하지만 정말 현실적으로 먹혀든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사람이 좀 모이면 호텔 측에 득이 되리란 순진한 생각을 했던 걸까. 시인이 메일을 보낸 ‘아만티 호텔’이 젊음의 해방구 홍대 근처에 위치한 호텔이란 점을 감안하다면 누구라도 이 제안의 비현실성을 알 수 있으리라.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남들 잘 나가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라며 못 마땅히 여기는 시선을 다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다섯이라면 부정적인 것은 열 개도 넘어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며 과거 운동권의 순수성을 뒤엎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그가 호텔방 바람을 일으켜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지만 ‘내 집만 있었더라면 이런 수모 당하지 않는데...’라는 투덜거림도 잠재우고, ‘호텔에서 살다 죽는’ 그의 꿈도 이루고, 동시에 ‘아만티호텔’이 도로시 파커가 머물렀던 뉴욕의 호텔처럼 문화생산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권순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