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문인수의 '얼룩말 가죽' 해설 - 권순진

공산(空山) 2019. 11. 15. 10:54

   얼룩말 가죽

   문인수

 

 

   법원 앞 횡단보도 도색은 늘

   새것처럼 엄연하다. , , , 백의 무늬가

   얼룩말 가죽, 호피 같다. 법이 실감난다.

   이걸 깔고 앉으면 치외법권

   산적 두목 같을까, 내 마음의 바닥도 때로

   느닷없는 뿔처럼

   험악한 수괴가 되고 싶다. 나는,

   이 거대한 늑골 같은 데를 지날 때마다 법에

   덜커덕, 덜거덕 걸리는 느낌이다

   인간이 참 제풀에 얼룩덜룩한 것 같다.

 

   저 할머니는 이제

   법이란 법 다 졸업한 '무법자'일까. 신호등

   빨간 불빛 따위 아랑곳없이

   무인지경의 횡단보도에 들어선다.

   강 건너듯 골똘하게 6차선 도로를 횡단해 간다. , , , .

   생사의 숱한 기로가 이제

   침침하게 미끄럽게 거의 다 지워져

   정지선 앞에 선 사람들도 어떤 운전자도 그만

   씨익 웃는다. 어려 보이는 한 교통경찰이 냉큼 쫒아가

   할머니를 부축해 정성껏 마저 건너간다.

   빨래판처럼 덜컹거리는 법 감정이, 시꺼먼 길바닥이

   문득 흰 젖 먹은 듯 고요히

   풍금처럼 흐르는 저, 모법(母法)이 있다.

 

   --시집 배꼽(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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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게 아니라 도색이 선명한 흑백 횡단보도를 보면 얼룩말 무늬 같다. 피아노 건반을 연상하기도 한다. 류인서 시인의 시 <울타리>에는 얼룩말의 검은 무늬와 흰 무늬 사이에서 바람이 생겨난다는 표현이 있다. 수록 시집 신호대기뒤표지에는 바람이 생겨나는 그 현상을 이렇게 적어두었다. ‘얼룩말의 검은 무늬와 흰 무늬가 가진 비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얼룩말을 우아한 얼룩말이도록 하는 줄무늬들이 실은 열대 사바나의 뜨거운 볕을 견디게 해주는 기능적 장치라는 얘기였다.’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의 상이한 열 흡수율, 그 온도차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바람이 열을 방사해 체온을 조절해준다는 거였다.’ 그렇듯 우림과 사막 사이, 얼룩말이 살아가는 경계부의 땅을 생각하며,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열려 있는 그 제3의 공간, 문학의 공간 역시 그런 곳 아닌가.’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얼룩말 줄무늬의 원래 바탕색은 무엇일까. 흰색 바탕에 검은 줄일까, 검은 바탕에 흰줄일까. 검은색 바탕에 흰줄 무늬가 정답이다. 흰 줄무늬를 새겨 넣음으로서 바람이 생기고 그 바람으로 체온이 조절되는 것이다.

 

   ‘법원 앞 횡단보도의 흑백 얼룩무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위법과 준법, 불의와 정의, 인치와 법치 따위의 대칭일 수도 있고, 시민 권력과 그 대척에 있는 사법 권력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법치도 좋고 사법 권력도 좋은데,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타당성, 집행의 투명성, 정의에 대한 복종, 예측가능성의 제공, 합리적 과정을 통한 사법 환경의 꾸준한 개혁 등이 전제되어야할 것이다. 법질서 확립의 형태가 정부나 검경, 법원의 자의적 법해석과 법적용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법치는 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고 준수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라, 국가와 권력자들이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들이 법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통치자의 개입에 의거 검찰 등이 자의적으로 남용할 때 쓰는 말이다. 지난 정권을 들추어보자면 퍼뜩 이명박 정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명박산성과 촛불집회 탄압, 불매운동 처벌, 공안사건 획책, 미네르바 구속, 용산 참사 초래, 집시법 개악, 사이버모욕죄 등 온라인 탄압, 기타 MB 악법 추진 등 그 퇴행적 법치 행각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런 정부를 윤 검찰총장은 자기가 경험한 바로 가장 쿨한정권이라고 했다. 힘이 다 빠진 정권 말기에 구체적 증거가 세상으로 다 드러난 사건의 사례를 들어 그딴 식으로 발언하는 윤 총장의 태도는 정말 예사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편협한 사고에서 정의감이나 균형감각은커녕 손톱만큼의 역사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망나니 완장을 차고 칼춤에 탐닉하는 산적 두목같다고나 할까. 그의 정무감각 없다는 말은 난 무대뽀라는 말로 들리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국민들에게도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다시 들린다.

 

   법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폭압적 사건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지금도 분노한다. 그 시절이 좋았노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검찰총장에게서 우리는 섬뜩함을 느낀다. 죄를 짓지 않아도 이 거대한 늑골 같은 데를 지날 때마다 법에 덜커덕 덜커덕 걸리는 느낌이다.’ 까닥하다가는 없는 죄도 뒤집어쓸 판이다. ‘인간이 참 제풀에 얼룩덜룩한 것 같다.’ 이러한 법 감정에서 언제나 놓여날 수 있을까. 법원 앞 횡단보도를 신호등 빨간 불빛 따위 아랑곳없이구부정 느리게 걸어가는 저 할머니처럼 이제, 법이란 법 다 졸업한 '무법자'’ 쯤 되면 몰라도.

 

   권순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