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구절송 전망대에 다시 올라

공산(空山) 2019. 11. 19. 17:42

지난 3월이었던가 보다. 구절송 전망대에 마지막으로 올랐던 것이. 봄과 여름이 왔다가 가고 가을도 다 가려는 오늘, 8개월여 만에 다시 올랐다. 단산지 중간길을 돌아 그곳으로 가는 길목엔 4차 외곽순환도로 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었는데, 그 도로의 터널 위로 가로지르는 등산로 구간엔 방부목으로 만든 길고도 근사한 계단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오르막길에서도 내 걸음은 예전처럼 가벼웠다.

 

구절송은 여전히 푸르렀다. 지금이야 소나무를 여러 가지 인위적인 수형으로 많이 가꾸지만, 저렇게 오래된 소나무가 아홉 개나 되는 줄기를 한 뿌리에서 고르게 뻗으며 산등성이에 자생하는 예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땔나무가 귀해서 야산들이 모두 민둥산이 되었던 시절에도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100살쯤이나 먹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홉 개의 줄기가 포개지지 않고 카메라의 앵글에 다 나오게 찍기가 쉽지 않았다.

 

"팔공산아, 내가 돌아왔다!"

모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구름을 이고 서 있는 팔공산을 향해 나는 전망대 마루에 서서 나지막히 말했다. 산은 내 인삿말의 속뜻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서 카메라의 배터리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품속에서 배터리를 데워가며 나는 오랜만에 보는 팔공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언제 보아도 늠름하고 기품 있고 수려한 그 모습이다.

 

강동마을쪽으로 하산하여 '독좌암(獨坐岩)'을 찾아 보았다. 어린 시절, 이 동네의 이름이 독지바우(독좌바우)였는데, 나는 동네 이름이 된 이 바위에 얽힌 내력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정작 그 바위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다. 바위는 뜻밖에도 대로에서 멀지 않은 산자락의 개울가 모퉁이에 기울어져 있었고, 부스러져 가는 이암(泥岩) 덩어리였다. 공산전투 당시에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 채 이 바위에 잠시 앉아 쉬었다는 고려 태조의 초라한 행색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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