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답 - 이바라기 노리코

공산(空山) 2019. 2. 24. 10:28

   답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껏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열네 살의 어느 날

   나는 문득 물었다

   할머니가 참말로 쓸쓸해 보이던 날

 

   지나온 세월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천천히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의외로 단번에 대답하셨다

   “아이들을 화로에 둘러앉혀놓고

   떡을 구워줬을 때“

 

   눈보라치는 저녁

   눈의 마녀가 나타날 것 같던 밤

   어스름한 램프 밑에 대여섯 명

   화로 앞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우리 엄마도 있었으리라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처럼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너무도 구체적이고

   빠른 대답에 놀랐다

   그날 이후 오십 년

   사람들은 모두

   감쪽같이 사라지고

 

   내 맘 속에서만

   때때로 종알대는

   소박한 단란

   꿈같은 대보름 축제

 

   그 시절 할머니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에서야 절절히 음미한다

   그 말 한마디 안에 담겨 있던

   구운 떡처럼 은근하게 짭조름한 맛을

 

 

   ―『처음 가는 마을』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