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시

당신은 발로 그녀를 - 에밀리 디킨슨

공산(空山) 2018. 2. 6. 14:50

 

   당신은발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발가락들이 있어야 할 곳에 손가락들이 달린

   아주 작은 자황색 손은

   이 기이한 생물체가 신고 있는 장화보다도

 

   모래를 감당하기에 더 적합할 것이오

   벨벳을 신은 발이라면 단추라도

   달아주련마는 그 장화는단추 하나 없이

   굽 하나로 지탱되지요

 

   당신은조끼로 그녀를 알아볼 것이오

   그 조끼는 몸에 딱 맞고황갈색인데

   더 칙칙한 겉옷 속에 입는 것으로

   그녀가 태어날 때 입었던 것이라오

 

   You'll know Herby Her Foot

   The smallest Gamboge Hand

   With Fingerswhere the Toes should be

   Would more affront the Sand

 

   Than this Quaint Creature's Boot

   Adjusted by a Stem

   Without a ButtonI could vouch

   Unto a Velvet Limb

 

   You'll know Herby Her Vest

   Tight fittingOrangeBrown

   Inside a Jacket duller

   She wore when she was born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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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연에서 시적 주체인 디킨슨은 비인격적 타자인 새를 의인화하여 그녀라고 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디킨슨이 새를 인격화하여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 시인들처럼 새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절대적 주관주의에 기반이 되는 일면적 상상력에 의존했던 낭만주의 시인들이 자연물을 주관화하여 자아에 동일시했던 것과 달리, “복합적 상상력을 통해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디킨슨은 자연물을 자신의 자아에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 휘트먼의 시적 주체는 내 자신의 노래에서 자신의 자아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개별성을 전제적 자아로 억압한 채 그것을 자신의 자아 속에 흡수해 버린다. 그 결과 그의 자아는 주체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타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 그의 자아관은 일면적이고, 그러한 휘트먼적 자아는 타자에 대해 전제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자아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그러한 휘트먼의 전제적 시적 주체와 비교해서, 디킨슨의 시적 주체도 타자를 주관화하여 타자와의 합일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서로의 군주이기 때문에”(P-642)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그녀는 자아의 타자성을 인식한 결과 타자의 개별성과 독립성 또한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타자를 전유화했던 휘트먼과 달리, 그녀는 타자에 대한 자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타자의 이타성을 존중한다. 이처럼 그녀의 자아가 주체와 타자와의 합일을 경험하면서도 주체와 다른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자아관은 복합적인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나타난 복합적 상상력윤정희, (L.I.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