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어제, 아내와 함께 울산에 다녀왔다. 만날 바쁘다는 울주의 김교수가 오랜만에 대구에 오겠다는 것을 말리고 우리가 간 것이다. 학교에서 그를 만나 함께 나의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정자항에 가서 대게를 먹었는데, 대게 값은 그가 내었다. 다시 학교로 와서 널따란 구내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함께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려다가 시간이 늦어 아내와 나만 돌아오는 길에 반구대에 들렀다.
마을 어귀에 주차를 한 뒤 나무 다리를 건너고 대숲길을 지나 10분쯤 걸어서 암각화 맞은편 전망대에 도착했다. 사연댐의 물이 지금은 많이 빠져서 암벽이 모두 드러나 있었지만, 암각화의 윗부분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역력했다. 이암(泥巖)에 새겨진 이 그림들이 댐이 건설되고 나서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게 되면서 풍화가 심하다는데,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아직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딱한 노릇이다. 전망대엔 망원경 세 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멀어서 그림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남겨 두고 부근의 암각화박물관에 들러 모형과 사진으로만 구경했다. 때마침 2층에서 열리고 있는 ‘백해(White Sea) 암각화전’도 관람하였다.
7,000~3,500년 전 신석기시대 말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 속의 그림들은 모두 300여 점이라고 한다. 긴수염고래, 대왕고래, 향유고래, 귀신고래 등 종류가 다른 고래 그림이 가장 많은데, 잡은 고래를 분배하기 위해 해체하는 장면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고래사냥) 장면도 있다. 그밖에 거북이, 사슴, 멧돼지, 호랑이, 표범, 여우, 상어 등의 동물들과 여러 사람이 탄 배, 사람의 전신상과 얼굴 등 면새김 그림(신석기)과 선새김 그림(청동기)이 혼재한다. 이 그림들은 아직 문자가 없던 당시에 풍요를 기원하고 후세대들에게 사냥 법을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언젠가 들었던 미학 강의가 생각났다. 알타미라, 라스코 등의 구석기시대 벽화들은 동굴 속에 그려지는 것이 특징일 뿐 아니라 잡아온 사냥감들을 눈앞에 보이는 대로 감각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사실적이지만, 반구대 같은 신석기시대 그림은 보았던 것들에 대하여 아는 대로 생각과 개념으로 그리기 때문에 패턴화가 돼 있다고. 그래서 반구대 그림을 잘 보면 상형문자를 많이 닮았다고.
돌아올 때도 갈 때와 마찬가지로 공사구간이 많은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타고 천천히 왔다. 고맙고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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