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등학교 동기인 하태와 상호, 영보와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 이들은 내가 장가갈 때 함을 진 친구들인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지난 시월의 아들 결혼식때는 멀리 울산과 양산에서 달려와 축하해 주었었다. 그래서 내가 오래 묵혀 왔던 그 오랜 고마움과 40년 후의 새로운 고마움을 함께 표시하기 위해 점심을 사기로 한 것이다.
미리 약속한 대로 나는 차를 몰고 시지로 가서 오전 열 시에 영보를 만나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울산 언양으로 가서 열한 시 조금 지나 하태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부산쪽으로 가다가 양산의 상호를 차에 태웠다. 우리가 정오가 지나 도착한 곳은 청사포 해안이었다. 토요일이라서 바닷가 주차장은 붐볐다. 늘어선 식당들은 모두 바다를 내려다보기 좋도록 높은 축대 위에 지어져 있었고,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모서리라서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바다는 더 넓고 수평선은 길었다. 대한해협 너머로 대마도가 잘 보이는 곳이라고 이곳에 자주 와 보았다는 상호가 말했지만, 오늘은 수평선 너머에 해무가 있어서 대마도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장 큰 접시의 회를 주문했고 우리는 그것을 먹으며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었다. 주로 오래된 추억담이었고 요즘 달아오르고 있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영보는 대화 중에 가끔 염불을 외거나 한시를 읊조렸다. 예전과 달리 하태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담석증이 심각하여 한 달쯤 전에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단다. 그러니까 여전히 술을 마실 수 있는 친구는 영보와 상호 둘뿐이었는데, 영보는 막걸리를, 상호는 소주를 마셨다. 세월의 풍화 속에 친구들의 겉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말투나 인생관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해가 해운대쪽으로 뉘엿뉘엿 떨어질 때에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호가 양산의 자기집에서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했지만 우리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며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러나 언양에 와서는 하태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아파트에 들러 부인이 차려 내놓는 닭죽과 군만두로 저녁을 먹었다. 차 마니아인 그들 부부가 끓여서 따라 주는 보이차도 마셨다. 밤길을 달려 시지에서 영보를 내려 주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리고, 어제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찍은 사진을 하태가 미국의 낙인에게 보내 주었나 보았다. 오래 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낙인이 그 사진을 보고 내게도 오랜만에 다음과 같이 문자를 보내왔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네. 횟집에 모인 친구들 얼굴 보고는 그 옛날로 다녀왔네. 올해도 건강하고, 마음의 이야기들을 아름답고 맑은 말의 그릇에 많이 담아 내시게나. 여기는 많은 눈이 다녀갔다네. 뒷마당에 죽은 소나무를 땅에다 눕혀 놓고 갔네. 바라볼 때마다 애가 쓰였는데, 편안히 누운 모습에 내 마음도 어찌나 좋은지..."
"낙인아, 오래만이네. 지난번에 치른 내 아들 혼사를 명분 삼아 오랜만에 친구들과 청사포에서 점심 먹으며 담소를 나눴단다. 겉모습들은 세월 속에 풍화가 많이 되었지만, 우리들 이야기 속에는 45년 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단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야 ㅋㅋ. 사진을 보면 창 너머로 높고 긴 동남해의 수평선이 멋진데, 저 바다가 자네가 사는 메릴랜드 앞까지 이어진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네. 코로나가 다시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다는데, 아무쪼록 새해에도 건강 잘 챙기며 행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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