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옛 생각을 하게 한 도배

공산(空山) 2018. 10. 14. 13:59

산가(山家), 9남매(54) 셋째로 태어나 본가에서 '숟가락 몽댕이 하나도 타 나오지 못한' 아버지와, 6남매(51) 둘째로 태어나 사실상 친정의 가장(家長) 노릇을 해야 했던 어머니가 만나 가정을 꾸려 평생을 사시던 곳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곳이다. 물론 예전에는 초가였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야 문명의 혜택을 입어 함석지붕으로 바뀌었었다(전기도 중학교 2학년때 들어왔다). 지붕만 바뀌었을 뿐 작고 천장이 낮은 큰방과 갓방(건넌방), 그 사이의 마루, 정지(부엌)가 있는 윗채와, 외양간, 가마솥이 걸린 디딜방앗간, 아랫방이 있는 아랫채는 옛날 그대로였다. 그런 옛집을 내가 허물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을 쌓아, 유리창과 기름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양옥을 지은 것은 22년 전인 199610(착공은 7)이었다. 단층 슬래브에 94.96의 면적이다. 아버지는 새 집에서 11년 반을 사셨고 어머니는 14년을 사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퇴직하면 이 집에서 함께 살 거라고 고대하셨는데, 아들이 퇴직하는 걸 끝내 못 보고 가셨다.

 

어제 그 산가에 22년 만에 도배를 하였다. 안방은 벽지 속에 단열재도 붙이고, 거실과 부엌 사이의 유리문과 문턱은 없애고, 곰팡이가 군데군데 꺼멓게 피었던 종이 장판도 모두 송판 무늬의 1.8t 비닐 장판으로 바꾸었다(인건비를 포함한 도배 경비는 230만원). 그리고 천장의 형광등도 모두 LED로 인터넷에서 사 바꾸고, 누렇게 바랜 스위치들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장농, 소파 등 너무 낡은 것들은 다 버리고 아파트에서 쓰던 것을 가져오기로 했지만, 그동안 바람벽에 걸어 두고 쳐다보던 옛 초가의 문짝 하나와 어머니가 쓰시던 체와 키(이 키는 내가 오줌을 싼 날 아침에 저를 뒤집어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가던 일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재봉틀, 다듬잇돌 등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사 주셨던 앉은뱅이책상은 불태우려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하여,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배가 끝난 뒷방에 도로 갖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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