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17번 홀에서의 무반주 첼로 독주

공산(空山) 2017. 11. 20. 18:59

   17번 홀에서의 무반주 첼로 독주

   송찬호 

 

 

   첼로 홀로 무대 한가운데 앉아 있다

   첼로 연주자와

   첼로 악보는

   술주정뱅이 음악과 함께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다

 

   세계는 루머로 가득 차 있다

   신흥 종교가 발생한 복음의 땅으로 황금 좌변기들이 떼 지어 날아간다

   양귀비들은 다시 국경을 넘었다 이제 그 붉은 난민들을 받아줄 곳은 지상 어느 나라도 없다

   어느 도시에서는 독특한 시위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창밖 거리로, 일제히 냄비를 집어 던진다

   아라비안나이트는 파탄이 났다 양탄자와 요술램프가 전격 이혼을 발표했다

   세계는 곧 어두워졌다

   객석에 검은 별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다

 

   첼로는 여전히 무대에 고적하게 앉아 있다

   연미복 첼로 연주자와

   양피지 첼로 악보는

   비틀거리는 음악을 부축하고

   연주회장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

   조명이 첼로를 한번 환하게 비췄다가 다시 흐려졌다

   객석의 어둠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턱을 깎았다

   개똥지빠귀는 핏빛 일몰의 유언장을 물고 날아왔다

 

   의자에서 첼로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들이 오고 있다!

   거대한 철탑의 송전선이 산 넘어 오고 있다

   자외선이 쏟아지고 있다

   오로라 살인자가 오고 있다

   자작나무 흰 도끼가 도시를 벌목하러 오고 있다

   연미복 첼로 연주자와

   양피지 첼로 악보가

   비틀거리는 음악을 부축하고

   장작더미 위로 오르고 있다

   활활활 연주가 불타고 있다!

 

 

   —「발견」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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