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장미

공산(空山) 2017. 9. 7. 14:39

   장미

   송찬호

 

 

   우리가 장미를 기다리는 동안

   이 세게에

   장미는 먼저 가시를 보내주었다

 

   우리가 오래 장미를 기다리는 동안

   이 세계는 조금 더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도 했다

   포탄 구덩이에서도

   사막의 아들들은 태어나고

   대물림해온 악은 더욱 큰 부와 명예로 대물림되었다

 

   보라, 앉은뱅이와 말더듬이가 갑자기 이렇게 많아진 건

   장미가 더 가까이 왔음이라,

   이 세계의 피가 모두 빠져나간

   창백한 저 흰 사원을

   우리의 폭력으로

   붉게 다시 채워보자

 

   장미를 보기 위하여, 오늘도 누군가 의자에 올라

   올가미에 얼굴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단호히 의자를 걷어차지는 못한다

   장미는 아주 가까이 왔으나,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는 않았다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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