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송찬호
나는 천둥을 흙 속에 심어놓고
그게 무럭무럭 자라
담장의 장미처럼
붉게 타오르기를 바랐으나
천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만 훌쩍 커
하늘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헐거운 사모(思慕)의 거미줄을 쳐놓고
거미 애비가 되어
아침 이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다시 창문과 지붕을 흔들며
천둥으로 울면서 돌아온다면
가시를 신부 삼아
내 그대의 여윈 목에
맑은 이슬 꿰어 걸어주리라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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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와 추상이 의인법으로 얽히고, 청각과 시각이 교차하는 그의 시의 가계도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기실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슬도 천둥도 한 몸이다. 천둥소리도 한 몸이다. 사모의 마음으로 가시에 꿰어 붉은 장미의 목에 걸어준 이슬도 장미를 드러내는 배경이다. 사모의 거미줄 위에 매달린 이슬을 다시 그대의 여윈 목에 걸어 주는 것은 천둥이 돌아올 때이다. 천둥은 곧 또 흙에 심어질 것이고 곧 또 장미인 그대의 목에 이슬로 걸릴 것이다.
‘장미’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어떤 시 보다 독특하다. ‘시를 쓰기 위해 어떤 대상에 다가갈 때, 그에게서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이미 다른 누군가의 시가 만지고 간 흔적인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미열 같은 것이 그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지나, 게으름을 건너, 스스로 무딘 언어라 호명한 언어들을 건너고 건너 망설임과 투정을 건너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 그 만의 “장미”를 피운다고 했다. ― 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