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튤립 - 송찬호

공산(空山) 2017. 8. 27. 16:05

   튤립

   송찬호

 

 

   먼데 나팔이 울리고, 누군가 2층 창문을 열고 외쳤다

   경찰이 오고 있다!

   그때 우리는 노랑이나 빨강 두건을 쓰고

   튤립당을 결성하여

   막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벌어진 일은 그대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백만 송이 대지의 등불이 꺼졌다

   삶이 무미하다는 걸 보여주듯

   소금이 오는 길은 끊어지고

   설탕과 담배도 국경을 넘어 달아나버렸다

 

   강낭콩 꼬투리 속에서 태어난

   꾀 많은 곰보 소녀는

   일곱 개 이야기 조각을 맞춰

   귀가 커다란 나라의 수수께끼 여왕이 되었다

 

   수십 년 바다를 떠돌던 사람들이 간간이 육지에 와 닿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꾀 많은 소녀가

   여왕이 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우리가 천국에 환멸을 느낄 무렵

   경찰도 마법이 풀렸다

   하여, 그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돼지로, 빗자루로, 부지깽이로

 

 

   ―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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