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송찬호
먼데 나팔이 울리고, 누군가 2층 창문을 열고 외쳤다
경찰이 오고 있다!
그때 우리는 노랑이나 빨강 두건을 쓰고
튤립당을 결성하여
막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벌어진 일은 그대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백만 송이 대지의 등불이 꺼졌다
삶이 무미하다는 걸 보여주듯
소금이 오는 길은 끊어지고
설탕과 담배도 국경을 넘어 달아나버렸다
강낭콩 꼬투리 속에서 태어난
꾀 많은 곰보 소녀는
일곱 개 이야기 조각을 맞춰
귀가 커다란 나라의 수수께끼 여왕이 되었다
수십 년 바다를 떠돌던 사람들이 간간이 육지에 와 닿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꾀 많은 소녀가
여왕이 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우리가 천국에 환멸을 느낄 무렵
경찰도 마법이 풀렸다
하여, 그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돼지로, 빗자루로, 부지깽이로
― 「분홍 나막신」 문학과지성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