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11월

공산(功山) 2017. 9. 7. 14:37

   11

   송찬호

 

 

   산 너머 사는 사슴들의 천도(遷都)소식이 들린다

   이제 사슴의 나라도

   한 도읍에서

   백 년을 버티지 못하는가 보다

 

   하늘이 소란하다 남쪽을 향해 날던 철새들이

   공중을 움푹 파고

   거기다 죽은 새를 묻는다

   그들은 갈 길이 멀어 지상에 내려와 장례를 치를 시간이 없다

 

   정원을 다스리던 나무의 왕도

   열 걸음을 걷지 못한다

   그는 늙었다

   이제 모든 게 시들었다

 

   지난 여름 수수께끼의 포도 씨앗을

   누가 가장 멀리 뱉었는지 모두들 까맣게 잊었다

   박태기나무 그늘에 묻혀 있던 녹색 의자도 벌써 치워버렸다

 

   이 소읍의 소문은 빠르다 부도난 은행과 여관이 몰래 도망가다

   맹렬한 첫추위에 잡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풍속(風俗)이 점점 어두워진다

   이제 불을 켜자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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