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26

巨大한 뿌리

巨大한 뿌리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女史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 會員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劇的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

김수영 2017.02.10

꽃잎1

꽃잎1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1967.)

김수영 2017.02.10

꽃잎2

꽃잎2 김수영 꽃을 주세요 우리의 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時間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偶然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꽃을

김수영 2017.02.10

꽃잎3

꽃잎 3 김수영 순자야 너는 꽃과 더워져 가는 花園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宇宙의 완성을 건 한 字의 생명의 歸趨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아님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는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 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全貌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 갑절의 공허한 投資 大韓民國의 全財産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 살 우리..

김수영 2017.02.10

瀑布

瀑布 김수영 瀑布는 곧은 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向하여 떨어진다는 意味도 없이 季節과 晝夜를 가리지 않고 高邁한 情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金盞花도 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醉할 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懶惰와 安定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幅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2017.02.10

풀 - 김수영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도올김용옥] "한국 정신사 속의 김수영 문학세계" 보러 가기 https://youtu.be/_9jfnW6kO_k?si=-emKsMsY-H63yemm

김수영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