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26

구름의 파수병

구름의 파수병 김수영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와는 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간과 마루 한 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김수영 2017.02.10

헬리콥터

헬리콥터 김수영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苦憫하고 있는 어두운 大地를 차고 離陸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愚昧한 나라의 어린 詩人들이었다 헬리콥터가 風船보다도 가벼웁게 上昇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自己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時節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時節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永遠한 生理이다 1950년 7월 以後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山脈 우에 姿態를 보이었고 이것은 처음 誕生한 것은 勿論 그 以前이지만 그래도 제트機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

김수영 2017.02.10

아버지의 寫眞

아버지의 寫眞 김수영 아버지의 寫眞을 보지 않아도 悲慘은 일찍이 있었던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寫眞에는 眼鏡이 걸려있고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現實처럼 그의 눈은 깊이 파지어서 그래도 그것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요 나의 飢餓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 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 나의 妻를 避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오 詠嘆이 아닌 그의 키와 咀呪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 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오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無理하는 生에서 그의 寫眞도 無理가 아닐 수 없이 그의 寫眞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하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悲慘이요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時計의 열두 시같이 再次는 다시 보지 않을 遍歷의 歷史…… 나는..

김수영 2017.02.10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2017.02.10

봄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靈感이여 (1957.)

김수영 2017.02.10

달나라의 장난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 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2017.02.10

序詩

序詩 김수영 나는 너무나 많은 尖端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停止의 美에 너무나 等閒하였다 나무여 靈魂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賢人들이 하여온 일 整理는 戰亂에 시달린 二十世紀 詩人들이 하여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靈魂은 그리고 敎訓은 命令은 나는 아직도 命令의 過剩을 용서할 수 없는 時代이지만 이 時代는 아직도 命令의 過剩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生氣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命令을

김수영 2017.02.10

死靈

死靈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黃昏도 저 돌벽 아래 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正義도 우리들의 纖細도 行動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달나라의 장난」 1959.

김수영 2017.02.10

가다오 나가다오

가다오 나가다오 김수영 이유는 없다 ――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사월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할아버지가 ..

김수영 2017.02.10

사랑의 變奏曲

사랑의 變奏曲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

김수영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