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이경림 가죽 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의 끝에서 나는 보았네 가은*이라는 유리문을. 나는 보았네 그 속에서 수 세기가 내 몸을 돌아 나오는 것을. 지나간 들판 지나간 산 지나간 마을회관 지나간 밤의 광장이 보여주던 무성영화들. 나는 보았네 똥장군을 지고 가는 장수아버지,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돌아가던 아랫마을 김 영감,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었네, 할머니는 방안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마에 칸델라 불을 단 광부들이 막장으로 가는 비탈에 한 줄로 놓여 있었네 한 떼의 개미들처럼 나는 보았네 검고 둥그렇게 서 있는 옥녀봉, 비탈에 자지러지게 피어있는 도라지꽃, 구호물자를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 악동 형태는 전봇대를 타고 고압선 쪽으로 오르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