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노정기(路程記) - 이육사

공산(功山) 2017. 2. 18. 22:58

   노정기(路程記

   이육사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애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가고

   전설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 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인 양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먼 항구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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