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실제(失題) - 이육사

공산(功山) 2017. 2. 18. 22:57

   실제(失題)

   이육사

 

 

   하날이 높기도 하다

   고무풍선 같은 첫겨울 달을

   누구의 입김으로 불어 올렸는지?

   그도 반 넘어 서쪽에 기울어졌다

 

   행랑 뒷골목 휘젓한 상술집엔

   팔려온 냉해지(冷害地) 처녀를 둘러싸고

   대학생의 지질숙한 눈초리가

   사상선도(思想善導)의 염탐 밑에 떨고만 있다

 

   라디오의 수양강화(修養講話)가 끝이 났는지?

   마-장 구락부 문간은 하품을 치고

   빌딩 돌담에 꿈을 그리는 거지새끼만

   이 도시의 양심을 지키나보다

 

   바람은 밤을 집어삼키고

   아득한 가스 속을 흘러서 가니

   거리의 주인공인 해태의 눈깔은

   언제나 말갛게 푸르러 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