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失題)
이육사
하날이 높기도 하다
고무풍선 같은 첫겨울 달을
누구의 입김으로 불어 올렸는지?
그도 반 넘어 서쪽에 기울어졌다
행랑 뒷골목 휘젓한 상술집엔
팔려온 냉해지(冷害地) 처녀를 둘러싸고
대학생의 지질숙한 눈초리가
사상선도(思想善導)의 염탐 밑에 떨고만 있다
라디오의 수양강화(修養講話)가 끝이 났는지?
마-장 구락부 문간은 하품을 치고
빌딩 돌담에 꿈을 그리는 거지새끼만
이 도시의 양심을 지키나보다
바람은 밤을 집어삼키고
아득한 가스 속을 흘러서 가니
거리의 주인공인 해태의 눈깔은
언제나 말갛게 푸르러 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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