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십대 소녀

공산(空山) 2017. 2. 4. 12:27

   십대 소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십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여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태어난 날이 서로 같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려가며, 그 애의 이마에 입맞춤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엔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단지 두개골과 안와(眼窩),

   그리고 뼈들만 동일할 뿐.

 

   그 애의 눈은 아마도 좀더 클 테고,

   속눈썹은 더욱 길 테고, 키도 좀더 크겠지,

   육체는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로

   견고하게 싸여 있겠지.

 

   친척들과 지인들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그 애의 세상에서는 거의 모두들 살아 있겠지.

   내가 사는 곳에서는

   함께 지내온 무리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는데.

 

   우린 이토록 서로 다른 존재,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말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신 뭔가 더 가치 있는 걸 알고 있는 양 당당하게 군다.

   나는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함부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 애가 내게 시를 보여준다,

   이미 오랜 세월 내가 사용하지 않던

   꽤나 정성스럽고, 또렷한 글씨체로 쓰인 시를.

 

   나는 그 시들을 읽고, 또 읽는다.

   흠, 이 작품은 제법인걸,

   조금만 압축하고,

   몇 군데만 손보면 되겠네.

   나머지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다.

 

   우리의 대화가 자꾸만 끊긴다.

   그 애의 초라한 손목시계 위에서

   시간은 여전히 싸구려인 데다 불안정하다.

   내 시간은 훨씬 값비싸고, 정확한 데 반해.

 

   작별의 인사도 없는 짧은 미소,

   아무런 감흥도 없다.

 

   그러다 마침내 그 애가 사라지던 순간,

   서두르다 그만 목도리를 두고 갔다.

 

   천연 모직에다

   줄무늬 패턴,

   그 애를 위해

   우리 엄마가 코바늘로 뜬 목도리.

 

   그걸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 충분하다문학과지성사(최성은 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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