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고문

공산(空山) 2017. 2. 4. 00:12

   고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육신은 고통을 느낀다.

   먹고, 숨쉬고, 잠을 자야 한다.

   육신은 얇은 살가죽을 가졌고,

   바로 그 아래로 찰랑찰랑 피가 흐른다.

   꽤 많은 개수의 이빨과 손톱.

   뼈는 부서지기 쉽고, 관절은 잘 늘어난다.

   고문을 하려면 이 모든 것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로마 건국 이전이나 이후,

   예수 탄생 이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또한 마찬가지.

   고문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땅덩이만 줄었을 뿐,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마치 벽 하나 사이에 둔 듯 가까이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인구만 증가했을 뿐

   해묵은 규칙 위반이 발생하면,

   현실적이면서 타성에 젖은,

   일시적이면서 대수롭지 않은,

   새로운 과오가 되풀이된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육신은 비명을 지른다.

   이 무고한 비명 소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역과 음계를 준수하며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재하리라.

 

   예식과 절차, 춤의 포즈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쥐는 손동작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육신은 몸부림치고, 뒤틀리고, 찢겨져 나간다.

   기진맥진 쓰러져, 무릎을 웅크리고,

   멍들고, 붓고, 침 흘리고, 피를 쏟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강물의 흐름과 숲의 형태, 해변,

   사막과 빙하를 제외하고는.

   낯익은 풍경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영혼이 배회한다.

   사라졌다 되돌아오고, 다가왔다 멀어진다.

   스스로에게 낯설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

   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

   육신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한,

   영혼이 머무를 곳은 어디에도 없다.

 

 

   ―「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최성은 역), 2007.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르메르(Vermeer)  (0) 2017.02.04
박물관  (0) 2017.02.04
죽은 자들과의 모의  (0) 2017.02.03
끝과 시작  (0) 2017.02.03
선택의 가능성  (0) 201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