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공산(空山) 2017. 2. 3. 20:23

   끝과 시작

   쉼보르스카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시체로 가득 찬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누군가는 길가의 잔해들을

   한옆으로 밀어내야 하리.

 

   누군가는 허우적대며 걸어가야 하리.

   소파의 스프링과

   깨진 유리 조각,

   피 묻은 넝마 조각이 가득한

   진흙과 잿더미를 헤치고.

 

   누군가는 벽을 지탱할

   대들보를 운반하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경첩에 문을 달아야 하리.

 

   사진에 근사하게 나오려면

   많은 세월이 요구되는 법.

   모든 카메라는 이미

   또 다른 전쟁터로 떠나버렸건만.

 

   다리도 다시 놓고,

   역도 새로 지어야 하리.

   비록 닳아서 누더기가 될지언정

   소매를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손에 든 누군가가

   과거를 회상하면,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도 멀쩡히 살아남은 머리를

   열심히 끄덕인다.

   어느 틈에 주변에는

   그 얘기를 지루히 여길 이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하고.

 

   아직도 누군가는

   가시덤불 아래를 파헤쳐서

   해묵어 녹슨 논쟁거리를 끄집어내서는

   쓰레기 더미로 가져간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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