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죽은 자들과의 모의

공산(空山) 2017. 2. 3. 23:41

   죽은 자들과의 모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처했을 때 주로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납니까?

   잠들기 전에 종종 그들을 생각하나요?

   누구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죠?

   매번 같은 사람인가요?

   이름은? 성은? 묘지명은? 사망 날짜는?

 

   그들은 주로 무엇에 관해 이야기합니까?

   오래된 우정? 혈연관계? 아니면 조국에 대해서?

   그들이 어디서 왔다고 밝히던가요?

   그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당신 말고 또 누구의 꿈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말하던가요?

 

   그들의 얼굴은 사진과 똑같았습니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도 늙었습니까?

   그들은 건강해 보였나요, 아니면 안색이 창백했나요?

   살해당한 자들은 예전의 치명적인 상처를 깨끗이 회복했나요?

   누가 자기들을 죽였는지 여전히 기억하던가요?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었습니까? 그 물건들을 쭉 적어보세요.

   그것들은 썩었나요? 녹슬었나요? 불에 탔나요? 부서졌나요?

   어떤 기색이 눈빛에 담겨 있었나요? 애원, 아니면 위협?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당신은 그들과 단지 날씨에 관한 이야기만 했습니까?

   새나 꽃에 대해서, 아니면 나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까?

 

   그들이 난처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신중하게 입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은근슬쩍 꿈의 주제를 바꾼다든지

   때맞춰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건 어떤가요?

 

 

  ―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최성은 역),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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