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만일의 경우

공산(空山) 2017. 2. 2. 13:01

   만일의 경우 

   쉼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났어야만 했어.

   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

   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

   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없었어.

   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

   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움직여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어.

   우연의 일치에 좌우되는

   불과 한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일촉즉발의 오차 내에서.

 

   그래서 넌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

   가까스로 열린 찰나의 순간에?

   그물에 뚫린 단 하나의 구멍, 그리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렸니?

   난 놀랄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

   자, 귀 기울여봐.

   네 심장이 내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두근거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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