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분실물 보관소에서의 연설

공산(功山) 2017. 2. 2. 14:28

   분실물 보관소에서의 연설

   쉼보르스카

 

 

   나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에 몇몇 여신을 잃어버렸다.

   또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에 많은 신들을 놓쳐버렸다.

   나의 별 몇 개가 영원히 꺼져버렸다.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섬이 하나 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심지어 어디에 발톱을 놓아두었는지도 통 모르겠다.

   누가 내 거죽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지, 내 껍데기 안에서 살아 숨쉬는 건 무엇인지.

   내가 육지로 기어 나왔을 때, 형제들은 다 죽었고.

   단지 내 뼈 가운데 일부만 내 안에서 기념일을 맞고 있다.

   나는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와 부질없이 척추와 다리를 혹사하고 말았다.

   그러곤 여러 차례 감각을 상실했다.

   오래전에 이 모든 것에 대해 세번째 눈을 감았고,

   지느러미를 움직였고,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사라지고, 소멸되고, 바람결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니.

   나는 한없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다.

   어제 전차 안에서 우산을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의 형체는

   그저 잠시 동안 빌려온 허물에 불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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