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조사
쉼보르스카
언젠가 트로이 대제국이 우뚝 서 있던 그 언덕에서
일곱 개의 도시가 발굴되었다.
한 편의 서사시를 노래하려면 도시 하나면 충분치 않을까.
나머지 여섯 개는 필요치 않다.
그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육보격의 시는 완전히 붕괴되어버렸다.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허구가 아닌 논픽션의 벽돌이 삐죽 튀어나온다.
무성 영화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와르르 벽이 무너져내린다.
대들보가 붕괴되고, 쇠사슬이 끊어진다.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남김 없이 말라버린 녹슨 주전자.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부적, 과수원의 씨앗들,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가져온 화석처럼
직접 손으로 만져야만 확인 가능한 두개골들.
태고의 흔적들이 퇴적물처럼 우리 옆에 빼곡히 쌓여간다.
공급 과잉으로 넘쳐날 지경.
무지막지한 지역 주민들이 원주민의 역사 속으로 난폭하게 쳐들어왔다.
고기 자르는 기다란 칼을 양손에 든 유목민들,
헥토르의 용맹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무명용사들,
수천 명의 개별적인 얼굴들,
매 순간 처음이고 마지막인 그 얼굴들,
제각기 범상치 않은 한 쌍의 눈을 가진 얼굴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동안은
한결 편했다.
공간도 훨씬 넓었고,
추모의 감정도 훨씬 풍부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인구 밀도가 유달리 낮았던 어떤 시대를 골라 거기에 전부 파묻어줄까?
아니면 그들의 금세공 기술을 인정하고 한껏 칭찬해줄까?
최후의 심판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 삼백만 명의 판사들 앞에는
각자 해결해야 할 사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에.
말주변이라곤 전혀 없는 군중들과
무수한 기차역들, 야외 경기장의 특별관람석, 다양한 행진과 시위들,
이국땅의 수많은 거리들, 계단과 벽들.
우리들은 백화점에서 새로운 물 주전자를 구입하면서
그렇게 영원히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호메로스는 현재 통계청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가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