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
쉼보르스카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로미오들은 결핵으로? 어쩌면 줄리엣들은 디프테리아로?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 스커트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두개골에 총알이 박혀 죽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야전 병원의 들것 위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무도회가 끝난 뒤 피로로 눈자위가 거무스레해진
저 황홀한 올림머리의 여인조차도
네가 아닌 댄스 파트너를 좇아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은판 사진이 탄생하기 전,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그 누군가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는 한 이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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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틸라 - 스페인이나 멕시코 등지에서 머리와 어깨를 덮는 여성용 대형 스카프.
보스 - 초현실주의 선구로 평가받는 화가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