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具
백석
五代나 날인다는 크나큰집 다 찌글어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구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해에 멫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질으터 맨 늙은 제관의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읗에 모신 신주앞에 환한 초불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위에 떡 보탕 시케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에하고 그리고 합문뒤에는 흠향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것과 없는것과 한줌흙과 한점살과 먼 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것
내손자의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水原白氏 定州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많은 호랑이같은 곰같은 소같은 피의 비같은 밤같은 달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것
―「문장」 2권 2호, 194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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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지고방 - 들문만 나 있는 고방
말쿠지 - 말코지. 물건을 걸게 만든 나무갈고리
신뚝 - 방이나 마루 앞에 신발을 올리도록 놓아둔 돌
열구 데석 - 열구 제석. 무당이 섬기는 가신제의 여러 신들
매연지나다 - 촌수가 떨어지다
최방등제사 - 평북 정주 지방의 토속적인 제사 풍속으로 차손이 맡아서 모시게 되는 5대째부 터의 제사
대멀머리 - 대머리
외얏맹건 - 오얏망건. 망건을 잘 눌러쓴 품이 오얏꽃같이 단정하게 보인다는 데서 온 말
교우 - 교의. 궤연을 차리거나 제사를 지낼 때 혼백상자나 신주 등을 놓는 기구
보탕 - 몸을 보한다는 탕국
반봉 - 제물로 쓰는 생선의 통칭
축 - 축문
합문 - 제사지낼 때 유식하는 차례에서 문을 닫거나 병풍을 쳐 가림
흠향 - 제사에서 신명이 제물을 받아서 먹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