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일기
허만하
비가 빛나기 위하여 포도가 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의 포도. 원수의 뒷모습처럼 빛나는 비. 나의 발자국도 비에 젖는다.
나의 쓸쓸함은 카를교 난간에 기대고 만다. 아득한 수면을 본다. 저무는 흐름 위에 몸을 던지는 비,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물안개 같다. 카프카의 불안과 외로움이 잠들어 있는 유대인 묘지에는 가보지 않았다. 이마 밑에서 기이하게 빛나는 눈빛은 마이즈르 거리 그의 생가 벽면에서 보았다.
돌의 길. 돌의 벽. 돌의 음악 같은 프라하 성. 릴케의 고향 프라하. "비는 고독과 같은 것이다."
엷은 여수처럼 번지는 안개에 잠기는 다리목에서 창녀풍의 늙은 그림자가 속삭인다.
"돌의 무릎을 베고 주무세요. 바람에 밀리는 비가 되세요."
중세기 순례자의 푸른 방울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따라온다.
"그리고 당신이 돌의 풍경이 되세요."
젖은 포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기교와 비에 젖는 지도의 일기.
프라하 칼프펜 거리는 해거름부터 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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