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강은 사막에서 죽는다 - 허만하

공산(空山) 2016. 2. 16. 11:53

   강은 사막에서 죽는다

   허만하

 

 

   빗방울이 모이는 곳에는 취락이 있다. 젖꼭지를 애에게 물린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어정거리는 골목길. 뱀 같은 끈으로 허리를 동여맨 흰옷의 여인이 맨발로 야생의 열매를 따는 마을.

 

   모인 빗방울은 곤륜산맥 산자락에서 한동안 새파란 여울을 이루다가 몇 갈래 물줄기를 모아 곧 지하로 모습을 감추어 줄곧 지하로 굽이치다가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르러 갑자기 모래 위에 눈부신 알몸을 드러내는 니야江. 푸른 너울.

 

   이곳에서 취락은 벌써 모래바람의 유적이다. 역사의 슬픈 발자국을 남긴 흐름은 망설임을 버리고 다시 모래바람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사막에서 사라지는 강. 나는 니야강의 최후를 지도 위에 남긴다. 반짝이는 섬세한 명주실오라기 같은 복류(伏流)의 흔적을 가장 가는 호수의 펜으로 그려 넣는다. 사라지는 강의 물빛. 최후의 물빛.

 

   타클라마칸 사막. 이곳에서는 무너진 흙벽돌 무더기가 사람보다 먼저 있었다. 모래는 다시 지평선을 묻어버린다.

 

   모래언덕에 서 있는 역광의 사나이. 이름없는 한 흉노족의 후예여.

 

   말 위의 그는 턱으로 가리킨다. 밤하늘에 드러누운 은하의 흐름을. 그때부터 강은 나의 내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것이 되었다. 화성에도 강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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