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평강 약전(略傳)
나희덕
그는 얼마간의 가축을 키웠다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 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한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닭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계간《시산맥》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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