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나평강 약전(略傳) - 나희덕

공산(空山) 2016. 2. 10. 16:47

   나평강 약전(略傳)

   나희덕

 

 

   그는 얼마간의 가축을 키웠다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 염소 한 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한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닭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낳은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계간《시산맥》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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