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뿔 - 신경림

공산(空山) 2016. 2. 12. 14:01

   뿔

   신경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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