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집 딸
나희덕
일어나자마자 닭장으로 달려가면
아버지가 손에 쥐어주던 갓 낳은 달결로부터
나는 따뜻함을 배웠다.
분노를 배운 것도 닭장에서였다.
부리로 상대의 눈을 쪼아대며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물러나지 않는.
건넛마을 아파트에 달결을 팔러 가던 날
친구를 만날까봐 언니 뒤에 비비 숨던 어느 대낮
숨을수록 햇빛은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닭도 달걀도 별로 돈이 되지는 못했다.
텃밭의 채소 몇 뿌리와 더불어
무언가 기른다는 것이 아버지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그 손에서 길러짐으로써 닭들은 아버지를 살렸다.
종종거리며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양계장집 어린 딸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결국 닭은 닭장 속에서 견디며
우리 이대(二代)를 견디게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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