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못 위의 잠 - 나희덕

공산(空山) 2016. 2. 10. 16:02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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