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코끼리

공산(空山) 2016. 1. 7. 14:19

   코끼리

   송찬호

 

 

   나는 거대하다

   나는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벌써 나는 삼만 년째 석상(石像)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미 오래전 사냥꾼들에게 그림자를 빼앗겼다

   그들은 내 몸을 마구 파헤쳤다 내 눈앞에서

   초원은 시들고 강과 호수는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배로 열차로 군대로

   내 살과 피를 조각내 운반해 갔다

 

   그들은 내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내 등에 그들의 의자가 놓여 있다

   그들의 식탁과 사무실과 침대가 올라타 있다

 

   그러나 보아라, 그들이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 재촉해도 나는 굳세게

   천천히 먹고 잠자고 천천히 이동한다

   나는 삼만 년째 석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거대하게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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