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송찬호
나는 아직도 오동나무를 찾아가던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어떤 푸른 그늘이 필요했다
하여 찾아간 오동나무와의 인사는 아름드리 그 나무 허리를 한번 안아보았던 것
근처에서는 딸기나무 관리인인 검은 염소가
청동의 고삐를 잃어버린 것일까
온통 딸기나무 밭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말했다 나무 위쪽에 빠끔한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는 작은 산비둘기 학교가 있고 발 아래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일궈놓은 이십여 평의 그늘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그 말을 들어서일까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먹는
오동나무 막국수가 얼마나 맛있던지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냉차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때 계절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염소의 두 뿔과 붉은 딸기가 얼마나 범벅이었던지
냇가에서는 돌과 잉어의 배가 얼마나 딴딴해졌는지
떠날 때 오동나무는 잎을 따 주었다
몇 번 사양을 했지만 푸른 날들을 잊지 말라며
내 주머니 속에 기어이 오동 잎 몇 장 꾸깃꾸깃 넣어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언덕 위 그 오동나무 그늘을 기억하고 있다
다리 건너 입구의 오동나무 편지통, 현관 앞 오 분 늦게 가는 오동나무 괘종시계, 진흙이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던 오동나무 구두, 부엌에서 들리던 오동나무 도마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