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가을

공산(空山) 2016. 1. 7. 12:44

   가을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 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 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2009. 5.

'송찬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랭이꽃  (0) 2016.01.07
오동나무  (0) 2016.01.07
만년필  (0) 2016.01.06
민들레역  (0) 2016.01.06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0) 201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