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가난의 빛

공산(功山) 2015. 12. 30. 14:27

   가난의 빛

   송찬호

 

 

   사내가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들을 차례차례 눕혔다

   물먹은 잠수함처럼 아이들은 금세 방바닥 깊이 꺼져 들어갔다

   그날 밤 그는 흰 빵보다 더 포근하고 거대한 잠 고래를 보았다

   그는 촘촘한 그물을 가만가만 내렸다

   그 빽빽한 가난에 걸려들면 무엇 하나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밤새도록 걷어 올린

   발 디디면 금방 꺼질 것 같은 조그만 섬들, 그의 아이들

   그는 조심조심 그 징검다리를 밟고 건너가

   그렇게 또 하룻밤 자고 되돌아갔다

   물가에서 울고있는 빈 항아리 같은 여자를 남겨 두고

 

   기와 한 장 깨져도 비가 새듯

   비늘 한 장 떨어진 창 너머 당신들의 방이 훤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가난의 빛이 눈부시게 흘러나왔습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1989.

'송찬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0) 2015.12.31
山經에 가서 놀다  (0) 2015.12.31
부유하는 공기들  (0) 2015.12.29
백한 번째의 밤  (0) 2015.12.29
목 부러진 동백  (0)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