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山經에 가서 놀다

공산(功山) 2015. 12. 31. 22:55

   山經에 가서 놀다

   송찬호

 

 

   이 숲속에 얼굴 붉은 짐승이 살고 있어

   그를 모든 짐승의 왕이라 칭했다

   그가 한번 울부짖으면

   여우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했다

   그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구경하기 위하여

   숲 입구에서 벌써 백리나 뒤쫓아왔다

   돌아보자니 숲은 장엄했다

   수만 근 무게의 구리 기둥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여기저기 쓰러져 누워 있고

   한꺼번에 수백 명의 밥을 지어 먹이던

   녹슨 쇠솥이 언덕에 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이리저리 숲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쉬이 만날 수 없는 법,

   긍휼한 우리들 중 몇몇은 숲 그늘에 앉아

   춤추고 노래하고 이끼 낀 누대에

   앉아 잠든 돌사자를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동백아,

   이제 그만 나무에서 내려오려무나

   꽃으로 돌아가자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