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經에 가서 놀다
송찬호
이 숲속에 얼굴 붉은 짐승이 살고 있어
그를 모든 짐승의 왕이라 칭했다
그가 한번 울부짖으면
여우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했다
그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구경하기 위하여
숲 입구에서 벌써 백리나 뒤쫓아왔다
돌아보자니 숲은 장엄했다
수만 근 무게의 구리 기둥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여기저기 쓰러져 누워 있고
한꺼번에 수백 명의 밥을 지어 먹이던
녹슨 쇠솥이 언덕에 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이리저리 숲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쉬이 만날 수 없는 법,
긍휼한 우리들 중 몇몇은 숲 그늘에 앉아
춤추고 노래하고 이끼 낀 누대에
앉아 잠든 돌사자를 어루만지기도 하였다
동백아,
이제 그만 나무에서 내려오려무나
꽃으로 돌아가자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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