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무인도를 위하여> 해설
꿈과 현실
-신대철의 시
김현
낮은 산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 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잎, 잎>
시집을 읽으면 그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어떻게 싸우고 성장했는가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가 제일 먼저 부딪친 환경은, 이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따라다니고 있는 산이다. 산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산이다. 그 산 속에서 자연과 평화롭게 교감한, 자연 속의 나로서, 혹은 내 속의 자연으로서 갈등 없이 교감한 시인의 유년 시절이 점차적으로 도시로서 표상될 수 있는 반자연적인 인위적 환경에 의하여 침해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그것의 대립 극복이 시인의 기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 <무인도를 위하여>의 신대철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산과 인공환경의 대립 극복의 문제
신대철의 자연관
자연과의 화해로운 삶은 그의 시에서는 유년시절과 꿈으로 표상되는데, 그것의 배경 대부분이 산이거나 그것의 변주다. 그의 자연인식은 박목월의 자연인식과 다르게 인간이 사상된 자연의 인식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자연이 자연 그대로 인식되는, 인간적 체험이 중시되는 자연 인식이다. 박목월의 <불국사>와 신대철의 <박꽃> 비교 박목월의 시에서는 자연 그대로 인식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데 반해 신대철의 시에서 자연을 자연 그대로 인식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신대철에게 자연인식은 자연과 그것을 느끼는 인간의 정감, 정조의 일치가 이루어져야만 평화로울 수 있는 그런 자연인식이며, 바로 그점에서 박목월과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자연과 시인의 감정 동일시 <칠갑산1>,<사람이 그리운 날 2>
그가 산으로 표상되는 자연과 친화감을 느끼게 된 것은, 그것이 그를 억압하지 않고, 그를 자유스럽게 놀게 하였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의 놀이에 대한 회상. 유년 시절의 추억 중에서 시인이 제일 집착하고 있는 것은 평화로운 잠이다. 유년기의 잠속 꿈에 점차로 조금씩 어둠이 깃든다. 산속에서의 삶과 하산해서의 삶, 다시 말해 억압 없는 놀이와 억압적인 노동 사이의 대립은 흔히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살기뿐인 생활과의 그것에 비유되는데, 신대철의 시에도 그런 유추를 가능케 할 시편이 한 편 있어 주목을 요한다. <처형 1>
자연과의 화해, 어머니와의 화해가 힘들다는 자각, 다시 말해 시인의 꿈에 어둠이 스미기 시작하는 것은 군대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의 군대 체험은 그의 평화로운 의식을 일깨워 꿈속의 어둠을 보게 만든다. 군대 체험은 괴로운 사고를 강요한다. 군대 체험은 시인의 꿈 자체를 분열시킨다. 꿈의 구조를 갖고 있던, 외계의 사물과 내적 감동의 동일화도 서서히 파괴된다. 유년 시절의 잠은 평화로운 호기심 많은 잠이지만, 군대 체험 이후의 잠은 꿈을 꾸는 자와 일상생활 속에 갇힌 자와의 갈등이 내포된 잠이다.
유년시절의 꿈에 스며든 현실의 어둠은 신대철의 경우,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거짓 욕망, 거짓 선택, 거짓 만족과 결부되어 있는 산업 시대의 인위적인 삶/ 농사꾼의 자연언어가 아닌 도시인의 개념적인 어휘로 생을 영위해가야 하는 개념적인 삶 '도회성'이 그 둘을 종합해 가고 있다.
도회에 인위성과 개념성에 갇힌 괴로운 시인은 결국 "깊은 산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 수는 없다. 살기 위해서는 내려와야 한다. 여기에 신대철의 체험적 모순이 숨어 있다. 이 시집에 실린 마지막 몇 편은 내려와서 살 수밖에 없는 고통을 노래하면서도, 내려와서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힘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의 시에서 낮은 곳은 높고 깊은 곳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하산을 상기시키는데 시집 후반부에서 낮은 것과 깊은 곳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리고 싶다는 이 '서술어'를 통하여 시는 수평적인 흐름에서 수직화한다. 이 시간은 자연의 한구석이나 세계의 한구석으로 밀려 들어와 고독하게 밝히는 불꽃의 시간이 아니라, 낙엽이 지고 이웃에 따뜻이 사람이 살아 있는 곳에서 자기와 이웃, 혹은 자기와 자연 사이에 질서를 가지려는 자기 형성의 시간이다. (신대철이 행한 황동규 시 분석)"
낮은 산은 도회의 개념성과 인위성에 가장 침윤되기 쉽지만, '자기와 이웃' 혹은 자기와 자연 사이에 질서를 가지려는' 노력을 그만큼 크게 하여, 삶에 대한 질문을 그만큼 깊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낮은 산도' 깊은 산처럼 깊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낮은 산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 거주하는 시인은 시대의 한기를 느끼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꿈틀거려야 한다. 그것이 신대철의 마지막 결론이다.
살아 움직이는 건 한기뿐이로군, 그는 앞서가는 자기 자신을 불러세우고 말했다.
(...)
꿈틀거려야지, 꿈틀거리지 않으면 시간은 모두 까마귀가 된다.
--<까욱, 까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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