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라원이의 대구 첫나들이

공산(空山) 2024. 9. 9. 17:05

태어난 지 1년 반이 된 손녀 라원이가 어제 낮에 난생처음으로 제 부모와 함께 대구에 왔다가 오늘 오후에 남양주로 돌아갔다. 그는 승용차를 타고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추석 열차표 예매를 놓쳐서 1주일 앞당겨 열차(SRT)를 타고 왔다가 간 것이다. 
 
어제 낮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승용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마중을 나갔었다. 불로동의 냉면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바로 팔공산으로 갔다. 도중에 잠이 든 라원이 고향집인 산가에 도착해서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 뒤쪽의 계곡으로 내려갔다. 더운 날씨라 물은 차지 않았다. 라원이는 얕은 물에 들어가 손발로 물을 튀기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이 개울은 내가 어릴 적엔 여남은 명의 마을 아이들이 여름이 되면 살다시피 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이 그림자도 하나 없다. 그땐 물이 바로 마셔도 될 만큼 맑았지만, 상류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면서 조그만 댐이 생기고 그 댐의 바닥에 쌓인 낙엽이 썩어 물이 예전 만큼 맑지는 않다. 아직도 버들치는 많지만 그 많던 가재는 사라지고 말았다. 물에서 놀다가 추워지면 엎드려 몸을 말리던 너럭바위는 예전 그대로이지만, 그 옆에 서 있던, 어린 내 또래의 소나무는 지금 하늘을 찌르는 아름드리가 되어 있다.
 
계곡에서 나온 후 동산의 부모님 산소에 갔다. 상석 위엔 텃밭에서 딴 포도와 맥주를 따른 컵을 올리고 함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렸다. 나에겐 부모님이지만 라원에겐 증조부모님이시다. 빠른 세월만큼이나 세대는 겹겹이 쌓여만 간다. 산소를 떠나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820m의 '신림봉'에 올랐다. 구름에 가려진 팔공산 주능선이 눈앞에 올려다보이는 그곳에선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간밤에 라원이는 아파트에서 밤이 이슥도록 자지 않고 밖에 나가자고 보채었다. 밤중에 제 부모랑 밖에 잠깐 나갔다가 와서야 겨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높은 진열대에 얹혀 있는 강아지 인형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줄곧 안고 다녔다. 아침을 먹고 부근의 봉무공원으로 구경을 갈 때도, 제 할머니가 옷을 사 주겠다고 아웃렛에 데리고 갈 때도 그 강아지를 놓지 않았다. (그건 예전에 내가 스위스에 연수를 갔을 적에 사 온 것인데 벌써 19년이나 지난 것이다.) 아웃렛에서 옷을 두어 벌 산 후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가, 우리는 동대구역으로 가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아직은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으앙 울어 버리고, 울다가도 금세 방긋 웃는 라원이다.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제 부모를 애타게 한다. 그렇지만 이제 반년 정도만 더 지나면 '엄마', '아빠'라는 낱말 외에도 많은 말들을 하게 될 것이고, 기저귀가 필요없게 될 것이고, 밥도 스스로 알아서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라원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더운 날씨에 엄마 아빠랑 먼 곳까지 다녀가느라 수고 많았다. 맘마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낼 테니.
 

할아버지의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개울로 갔다.

 

 

 

 

 

사발 그릇처럼 생겨서 '사발웅디'라고 불리던 이 웅덩이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수영장이었다.
팔공산 케이블카도 타고

 

 

'예쁜 짓' 포즈를 취하는 라원이
할머니의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시범 연주
더위 속에서도 강아지 인형을 안고.

 

 

 

열차를 타고 가면서 찍어 보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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