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텃밭 식구들의 근황

공산(空山) 2024. 6. 24. 20:43

지난 주말에 북상했던 장마전선은  이곳 팔공산 지역에 하루만에 30mm 정도의 비를 뿌려 가물던 텃밭을 적셔 주고는 다시 남쪽으로 물러나 있다. 아직 7월도 오지 않았지만 기온은 연일 30도를 훨씬 웃돌며 무덥다. 이런 가운데 텃밭 식구들은 열심히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가고 있다. 저희들에게 할애된 계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다.

고구마는 무성해진 잎들이 본격적으로 덩굴을 뻗칠 채비를 하고 있고, 참깨는 아래쪽부터 벌써 꽃을 피우고 있다. 고추도 키가 많이 자라서 먼저 달린 열매는 매운맛이 돌기 시작했다. 여남은 포기의 토마토들도 한창 열매를 맺는 중인데, 그중 흑토마토 네 포기는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이웃마을 친구가 자기 밭에 심고 남은 것이라며 내게 준 것이다. 복숭아와 복숭아 나무에 접목하여 열린 자두는 거의 다 익어 향기롭지만, 방재를 제때에 하지 못해 벌레먹은 것이 많다. 포도는, 텃밭에 캠벨얼리 두 그루, 샤인머스켓 한 그루, 집 앞 마당에 거봉 한 그루가 있는데, 각자가 하루가 다르게 포도알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저 샤인머스켓 포도나무의 원줄기에 나 있는 끔찍한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건 3년 전에 어린 나무가 쓰러지지 말라고 말목에 묶어 둔 자리인데, 줄기가 굵어짐에 따라 노끈에 졸려서 생긴 상처다. 새순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나는 신종 포도나무의 특성이겠거니 하며 포도가 많이 달렸다고 좋아만 했다. 뒤늦게 줄기가 노끈에 졸려 있다는 것을 알고 며칠 전에야 노끈을 풀고 말목도 뽑았다. 주의깊지 못한 이 어설픈 농부는 하루 빨리 나무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속죄하는 마음이다.

참외와 수박도 열심히 덩굴을 뻗으며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이다. 지금 탁구공만 한 수박이 며칠 후엔 야구공만 해질 것이고 몇 주 후엔 적어도 배구공만 해질 것이다. 대추나무 옆 호박덩굴은 아내에게 벌써 큰 머그컵만 한 애호박을 두 개나 건네주었다. 옥수수는 꽃이 한창이어서 꿀벌들로 성황이고, 호두도 열매들을 열심히 키우고 있다. 들깨 모종은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지만, 정식 시기를 늦춰야 웃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씨를 뿌려 이제 손톱 크기만큼씩 자라고 있다. 마늘은 오늘 캤는데, 여느 해보다 마늘통이 커서 풍작이다. 양파는 겨울에 얼어 죽은 것이 많아 봄에 모종을 사서 추가로 심었지만 잎만 무성하고 구근은 대파같아서 실패작이다. 앞으론 봄에 양파를 심으면 안 되겠다.

그밖에도 함께 살아가는 텃밭 식구들은 많다. 검정콩, 울콩, 땅콩, 키위, 대추, 야콘, 파프리카, 양배추, 비트, 케일, 오이, 가지, 떫은감, 단감 등도 계절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과 함께하는 한 나의 계절도 삶도 결코 헛되게 지나가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스스로 통속通俗에 빠져 버리지 않기 위해 아무데서나 꿈이니 행복이니 하는 말들을 남발하며 살아가지는 않으리라.

 
 
 

고구마와 참깨
참깨와 토마토
고추
캠벨어리
샤인머스켓과 줄기의 상처
참외와 수박
호두
옥수수
복숭아(미황)와 자두
블루베리
들깨 모종
야콘, 파프리카, 단호박
수확한 마늘
집앞의 접시꽃
익어 가는 참깨(이하 사진은 8월 12일의 모습들이다)
들깨

 

사과대추(올해는 제대로 전지를 하여 열매가 많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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