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후남 언니 - 김선향

공산(空山) 2024. 5. 25. 21:28

   후남 언니

   김선향

 

 

   견디다 견딜 수는 없어

   하루에 다섯 대까지 아편을 맞았다지

 

   일본 군인들이 자신의 몸을 짓밟든 말든

   자신의 영혼을 갈가리 찢든 말든

   말문이 닫힌병든 검은 새는 아편만 찾았다지

 

   쓸모가 없어진 그녀를 일본 군인들은

   만주 벌판에 내다버렸다지

 

   낮밤으로 들리던 그녀의 울음은

   까마귀 울음과 닮았다지

 

   풀이 보리순처럼 피어오르는 고향의 들판을

   엄마가 지어준 검은 뉴똥치마 입은 소녀를

   죽어가는 그녀는 떠올렸다지

 

   철조망 너머 까마귀가 날아와 그녀를 파먹었다지

   한겨울 만주 벌판의 밤

   몇 조각 뼈만 빛났다지

 

   돌아오지 못한 여자를

   모질게 살아 돌아온 여자가 기억한다지

 

 

   ― F등급 영화』 삶창, 2020

 

 

산가에서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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