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일기 - 안도현

공산(空山) 2024. 5. 19. 21:44

   일기

   안도현

 

 

   오전에는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 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 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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