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
함기석
밤물결 타고 멀리 떠난 사람 있어
당신 옷 다 태우니, 잠결마다 노 젓는 소리
먼 후생의 하류로 흘러드는
외딴 배, 외딴 묘에 바늘 빗소리
당신 떠나고 텅 빈 밤하늘은
돼지고기 세 근 도려낸 생살 부위 같은데
난 이제 믿지 않을 테다 헐벗은 사랑 따위
처서 눈썹이 휠 무렵
밤물결 타고 가슴속 오래 가라앉는 사람 있어
밤새 뒤척이다 귀 열면
새벽하늘 저 높은 곳에도 밥물 끓는 소리
—《포엠포엠》2023년 가을호
-------------------------------------------
눈물겹게 작별하는 사람이 있다. 함기석의「떠난 사람」은 이별이 아니라 작별의 마음을 대면하게 한다. 시인에게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대상은 ‘어머니’인 듯하다. 위 시에는 “먼 후생의 하류로 흘러드는” “밤물결 타고 멀리 떠난 사람”,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머니가 바로 “떠난 사람”으로 표현된다.
시인은 어머니는 “헐벗은 사랑”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돼지 고기 세 근 도려낸 생살 부위 같은” 사랑이라니 진정 기가 막히지 않은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그 사랑은 “헐벗은 사랑” 자체로 앙상한 뼈로 남은 아픈 사랑이다. 특히 “바늘 빗소리”로 폐부까지 닿아 찌르는 어머니와의 작별하는 순간의 애통함은 가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시인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깊은 슬픔을 “새벽하늘 저 높은 곳에서도 밥물 끓는 소리”로 지상에 남은 자식을 위해 천상에서도 변함없이 밥을 짓는 어머니를 아프게 환기한다. 짐작건대 함기석 시인은 지금 어머니와 애달픈 작별을 하는 중이다.
—《현대시학》 2023년 11-12월호 격월평
-----------------------------------------------
전해수/문학평론가.저서로는『비평의 시그널』 『메타모포시스 시학』 『푸자의 언어』등.현재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해설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상옥의 「어느 날」 감상 - 최형심, 나민애 (0) | 2024.02.03 |
---|---|
[자작시 해설] 여행 - 김선영 (1) | 2024.01.24 |
권박의 「폭우」 감상 - 최형심 (0) | 2023.11.20 |
김종해의 「항해일지·1」 - 서범석 (0) | 2023.11.14 |
릴케, 「두이노의 비가」 중 제2비가 평설 - 신형철 (0) | 2023.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