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권박의 「폭우」 감상 - 최형심

공산(空山) 2023. 11. 20. 10:35

   폭우

   권박

 

 

   뼈가 쏟아진다.

   전생의 일이다.

 

   왜 뼈가 지금도 쏟아지는가.

   왜 나는 아직도 맞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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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박 시인이 페미니즘 시를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작품의 행간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뉘앙스를 읽어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행 왜 나는 아직도 맞고 있는가.”라는 문장과 마주하자 폭우와 가정폭력이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 맞는 사람은 항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먹구름이 끼지는 않는지 하늘을 살피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로 폭력은 천둥이나 번개처럼 한 번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피해자는 빗발치듯 쏟아지는 폭력을 맨몸으로 맞고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고 그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경험, 가정폭력. 하지만 가해자는 폭우가 지나간 다음 날처럼 내일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환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형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