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일지·1
김종해
을지로에서 노를 젓다가 잠시 멈추다.
사라져 가는 것, 떨어져 가는 것, 시들어 가는 것들의 흘러내림
그것들의 부음訃音 위에 떠서 노질을 하다.
아아, 부질없구나
그물을 던지고 낚시질하여 날것을 익혀 먹는 일
오늘은 갑판위에 나와 크게 느끼다.
오늘 하루 집어등集魚燈을 끄고 남몰래 눈물짓다.
손이 부르트도록 날마다 을지로에서 노를 젓고 저음이여
수부水夫의 청춘을 다 바쳐 찾고자 하는 것
삭풍 아래 떨면서 잠시 청계천 쪽에 정박하다.
헛되고 헛되도다, 무인도여
한 잔의 술잔 속에서도 얼비치는 저 무인도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다.
그러나 눈보라 날리는 엄동嚴冬 속에서도 나의 배는 가야 한다.
눈을 감고서도 선명히 떠오르는 저 별빛을 향하여
나는 노질을 계속해야 한다.
―『시현실』, 2023 가을. 재수록
<시 읽기>
을지로·청계천 등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서정적 자아는 존재한다. 노를 젓는 수부인 그는 떨어지고 시들고 사라지는 것들의 위에 떠서 노를 젓고 또 젓는다. 행선지는 ‘무인도’인가 보다. 왜 그럴까. 사람이 없는 섬을 찾아 매일 항해하는 일이라니! 참 덧없구나. 아니, 무던히도 인간들에게 차인, 치인, 낀, 밟힌, 까인 인생인가 보다.
사실이다. 우리의 괴로움은 모두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 무인도가 그리울 수밖에…. 그러나 정말 인간이 없는 무인도 같은 곳에서 살아가라고 한다면 잠시는 몰라도 어렵고도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인간 때문에 괴롭고, 인간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우리는 ‘눈보라 날리는 엄동’에도 ‘저 별빛을 향하여’ ‘노질을 계속해야 한다.’는 자세가 현명하고 타당한 것이 아닌가. 현대인의 실존적 의미를 담아 ‘현대 서정시’의 전범을 보여준 가작이 아닐 수 없다. (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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