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가을 전차 - 서대경

공산(空山) 2023. 11. 29. 09:02

   가을 전차

   서대경

 

 

   가을이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육교도 천변도 천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도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퇴근을 해도 갈 곳이 없는 나는 낡고 허름한 상가 골목을 쏘다니다가 양복 입은 흡혈귀 소설가와 마주쳐도백반집에서 혼자 밥 먹는 서대경 씨가 소리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가을 햇살 부서져 내리는 고가도로 아래서가을 전차에 오르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였다하늘이 너무 파래요거리의 웃음이 너무 커요내 옆에 앉은 굴뚝의 기사가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붙들고 중얼거리는 동안에도종을 딸랑이며빨랫줄에 걸린 색색의 옷들 단풍처럼 나부끼는 좁은 골목을 가을 전차가 달려가는 동안에도내 마음은 몹시 아득하기만 하였 다나는 답답한 가을 넥타이 풀어헤치고철공소 앞 가을 바다 넘실대는 골목 끄트머리에 그냥 내려버린다이곳에 언제 바다가 생겼지플라스틱 바구니에 든 생선에 소금 뿌려 박박 문지르던 시장 아줌마가 삼사 년 됐어요말해주었지만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 다리에 철썩이는 파도 우두커니 바라보는 동안에도가을은 그저 내 목을 조르는 듯하였다퇴근을 해도 갈 곳이 없는 나는 가방을 바다에 던져버린다바닷물 철벅이며 바삐 오가는 사무원들 바라다보이는 언덕바지에햇볕 따사로운 가을 닭장 곁에 나는 앉아버린다.

 

 

   ― 『굴뚝의 기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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